New York City, USA


   나는 30의 나이에 서울에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 뉴욕으로 떠나 월세가 그나마 싼 할렘에 자리를 잡았다.
되지도 않는 영어를 써가며 하루 하루 세탁소에서 밥벌이를하고 틈틈히 숨어서 공부를 했는데 영어도 못하는것이 MBA공부를 한다면 개나소나 웃을께 뻔했기 때문이다. 다른 주로의 이주비용이 걱정되어, 나는 근처 Columbia GSB에만 지원했었다. 지원 후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피와 살을 말리는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Admission 메일을 받은 순간 기쁨도 잠시, 난 더 큰 중압감을 느꼈다. 세계유수의 엘리트집단들 사이에 홀로 선 연약한 나 자신을 떠올리니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하지만 난 계속 걸어야만 했고 그 동기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 대한 예의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도, 서울 직장동료들의 입소문도 아닌 나 자신에대한 끈질긴 믿음 때문이었다.

  결국 2년동안의 전쟁같은 나날들은 나에게 Summa cum laude라는 영광과 Goldman Sachs라는 새로운 직장을 안겨다 주었다. 이곳 내 사무실에선 멀찌감치 Statue of Liberty가 보인다. 거짓말 같겠지만 뉴욕에 와서 처음 본다. 이건 곧 상상속의 자유따위보단 현실속의 경쟁력이 전부라는 의미라는 생각이며, Statue of Liberty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대다수로 짐작되는 이 빌딩숲에서 이제 내 인생의 2막을 시작하려 한다...



Brooklyn bridge.




여기까지 다 개꿈이다.
근데 나 정말 할렘에서 월스트릿까지 갔삼. 걸어서 갔삼.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갔더니 총 12시간 걸렸삼. 맨해튼 남쪽끝, South Ferry에 도착하니 자정이었는데 거기서 낚시질하던 할아버지가 나보고 미친넘이라고 10분동안 설교했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ov. 14, 2007
New York City, USA

뉴욕 도착했으나 졸려 죽갔다.
아침에 비행기를 놓칠까봐 밤새고 탔는데 옆에 앉은 French couple이 술마시고 시끄럽게 떠드는판에 잠을 잘 못잤다. 그래도 그 커플, 와인을 돈내고 사려는거나 이륙시 막 아기처럼 흥분하는거보니 귀엽기도했다. 그런데 남자는 40대 초반쯤 여자는 20대 후반쯤되 보여서 오늘 새벽에 빠히에서 본 우디앨런의 맨해튼이 생각났다. 오른쪽 앞의 좌석에는 20대 중반의 남자와 40대 초반의 여자 French 커플이 있다. 내가 맨해튼을 봐서 그런지, 맹이 슈퍼파워로 현실을 조작해서 그런지 아님 그냥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참 이상한 비행기다.

JFK에 도착하자마자 뱅기에서 $27 짜리 면세답배를 안산걸 후회했다.
반값도 안하는건데... 바보! 바보!를 외치며 말았다 ㅡㅡ; 역시 물가는 상대적인거다. 뭐냐면 아무리 싼 동남아나 중동의 여느나라를 가도 그곳 물가에 금방 적응되어 $1짜리 캐밥도 비싸게 느껴지고 레이캬빅같은데 가면 $5짜리 맥주는 싸게 느껴진단 말이다. 내가 가장 싼 나라에서 생필품들을 왕창 사서 다니지 않는다면(which is impossible) 결국 현지 물가대비 반값이하인 물건은 가격이 얼마든 충분히 살가치가 있다는게 결론이다.

아 그리고 또 Immigration office에 가서 한 10분 면담해주고 나왔다. 그까이꺼 뭐...

Lonely Planet 이 없으니 이건 뭐 장님이 따로 없다.
Info에 가서 지도도 좀 받고 공항 빠져나가는거도 좀 물어볼려고 했는데 왼 꾸부정 할머니가 날 반긴다. '그냥 시내가는 싼 옵션이나 물어봐야지...' 했는데 그 할머니가 뉴욕관광책자, 시내지도, 공항맵, 교통편등 너무 자상하게 잘 가르쳐 주신다. 게다가 내가 어디서 머무는지 말할때는 조용히 속삭이라면서 날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 '니가 어디가는지 막 광고할 필요는 없어. 누가 들으면 위험할 수 도 있단말야' 이러면서 항상 돈 보여주지 말고 조심조심 다니라고 조언까지 해주신다. 나같은 작은아들(?) 이 있어서 아들같아서 그런다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도착한지 1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내가 북미대륙에서 이런 진솔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고마운 할머니...

결국 Manhattan에 와서 예약한 호스텔에 들어왔으나 아주 계속 졸립다. 아직 낮이니 짐 자면 X된다싶어 안잘라고 안잘라고... 동네도 돌아다니고 피자쪼가리도 씹어보고 영화도 보고 지도도 익히고 별짓을 다하다가 결국 9시정도되서 쳐잤다.

므하하.

Nov. 13, 2007
잘 있었어?
그냥 쌩뚱맞게 전화해서 미안한데 오늘 새벽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모르겠어. 그냥 엄마가 이런일은 기도해 달라고 알려야한다고 해서...


어제 동기에게서 이렇게 전화가 왔다.
난 전화기에 뜬 이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받았지만 (그래 나 이제 caller ID 서비스 받는다)
전화 내용에 괜시리 미안해 진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참 바쁜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속이 텅 비었다
마치 주위 모든 일들이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일단 나도 모르게 동문사이트에 소식을 알린다
아무래도 경험상 이런 일은 알려서 지인들의 마음이 당사자에게 전해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오늘 저녁 찾아간 그 곳은
8년 전에 아버지가 치료를 받던 그 곳이었다
택시 속에서 멀리서부터 보이던 그 낯설면서 묘하게 익숙한 모습이란...

걱정했던 것보다
잘 견디고 있는
혹은 잘 견디는 척 보이는 친구 그리고 가족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인다...


다만 당사자들도 잘 견디고
그 분도 편히 쉬시길 다시 한번 기도해 본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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